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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29 이는 감람 나무가 가진 중요한 특징 때문입니다. 감람 나무는 유실수로 그 열매가 다양한 용도로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감람 나무는 여느 나무와 마찬가지로 심은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무들은 일반적으로 3년 남짓 지나면 열매를 거두는 것이 보통인데 감람나무의 경우 그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만 열매를 맺습니다. 무려 7년을 기다려야만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98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것은 3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3년 동안이나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112 이는 무엇을 보여줍니까? 부부 사이의 신뢰가 무너진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면, 저 사람이 나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의식이 팽배하다면 그 가정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서로를 믿는 신뢰감이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행복한 가정, 안정된 가정은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168 즉 인간관계 모든 계명 중 가장 중요하며 큰 축복이 약속된 계명으로 반드시 지킬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494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대하 32:5)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느 4:9-20)
위 사양대로 인코딩(동영상 변환)을 하셔야만 E10에서 동영상을 재생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cafe.naver.com/irivere10.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708 연말, 송구 63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로 말미암아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들의 지은 모든 죄에 대한 응보를 받은 것입니다. 이는 ‘인자의 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삶을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면서 지은 모든 죄에 대하여 ‘인자의 때’에 철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91 초대교회 성도들은 누가 시키거나 명령하지 않아도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것이 너무나 기뻤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 속에 있는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170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가 어떠했든지 이제 그 과거에 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새 날을 소망하여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31 과학자 톰슨은 임종시에 제자들이 묻기를 “선생님께서 발견하신 것 중 최대의 발견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하자 “나의 생애에서 가장 큰 발견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354 한 때 모든 디자인을 다 손으로 그려서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컴퓨터로 디자인을 하는 것이 도입되었습니다. 손으로만 그리다가 마우스가 손에 익지도 않은 상태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러나 보십시오. 일단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에 완전히 적응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효율적으로 매우 정밀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펜을 마우스로 바꾸는 불편의 과정을 감수한 디자이너만이 그 편리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변화에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478 고려 시대의 우탁은 세월에 대하여 이렇게 한탄하였습니다. “한손에 막대 잡고 한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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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저작인접권에 관한 기초지식> 1. (저작물) 저작물이란 무엇인가? 저작물은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일정한 형식에 담아, 이를 다른 사람이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작물을 지각할 수 있는 유형적인 수단으로는 책이나 디스켓 등이 있다. 이는 저작물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 소유권 등의 일반 재산권의 대상이 된다. 저작물은 그 그릇에 담겨져 있는 무형적인 것으로 이것이 바로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서점에서 소설을 훔쳤다면 이것은 책이라는 유형의 복제물, 즉 재산을 훔친 것이고, 일반재산권을 침해하였기 때문에 민법상의 불법행위와 형법상의 절도죄를 저지른 것이 된다. 반면,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서 책을 빌린 후 이로부터 수십 부의 복제물을 만들고 나서 다시 되돌려주었다면, 이 행위는 일반 재산권의 침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책 안에 들어 있는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 것이므로 저작권법 위반이 된다. 저작물의 보호요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독창성을 지녀야 한다. 여기에서 독창성이란 표현의 독창성을 말한다.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다른 사람의 표현형식을 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표현할 경우에 독창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작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오직 독창성만을 요구한다. 따라서 특정 저작물이 예술성이 떨어진다거나 가치나 품격이 없다고 하더라도 독창성이 있다면 저작물이 된다. 2) 다른 사람이 느껴서 알 수 있을 정도로 외부에 나타내어야 한다. 어떤 구상이나 아이디어, 화풍 등은 바깥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므로 저작물이 아니다. 저작자의 머리속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느낄 수 있도록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나타내어야 한다. 그러나 저작물이 유형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표현형식이 무형적인 것이더라도 다른 사람이 느껴서 알 수 있으면 된다. 예를 들어, 강연은 아무런 고정 과정을 거치지 않지만 저작물로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 창업아이템과 같은 아이디어는 저작권법상 보호될 수 없다. 저작권법의 대전제는 ‘아이디어’(사상이나 감정)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의 ‘표현’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다음과 같이 예시하고 있다. ① 소설, 시, 논문, 강연, 연술, 각본, 그 밖의 어문저작물 ② 음악저작물 ③ 연극 및 무용, 무언극 등을 포함하는 연극저작물 ④ 회화, 서예, 조각, 공예, 응용미술저작물, 그 밖의 미술저작물 ⑤ 건축물,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를 포함하는 건축저작물 ⑥ 사진 및 이와 유사한 제작방법으로 작성된 것을 포함하는 사진저작물 ⑦ 영상저작물 ⑧ 지도, 도표, 설계도, 약도, 모형, 그 밖의 도형저작물 ⑨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
2. (저작권)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이란 무엇인가? 문화란, 사람의 정신적 활동으로 얻어진 물질적‧정신적인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문화를 육성하려면 근본적으로 개인의 창의가 존중되고, 그 창작 결과가 보호되어야 할 뿐 아니라 창작에 어울리는 이익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저작권법은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사람에 대하여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권리로서 저작권을 부여하고 있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이라는 일정한 대상 위에 있는 저작자의 이익을 보호한다. 따라서 저작권법은 저작자가 만들어 낸 결과물로서의 저작물 위에 존재하는 이익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저작권은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뉜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의 명예와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로서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으로 나뉜다. 저작재산권은 저작물을 어떤 방법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복제권, 공연권, 방송권, 전송권, 전시권, 배포권, 2차적저작물 작성권 등의 권리로 세분된다. 이러한 성질과 내용을 가진 저작권은 “특정 저작물을 배타적으로 지배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인격적‧재산적 권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저작인접권이란, 글자 그대로 저작권에 인접한, 저작권과 유사한 권리라는 말이다. 이 권리는 실연자(배우, 가수, 연주자), 음반제작자 및 방송사업자에게 귀속된다. 저작권법은 각각의 저작인접권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실연자는 배타적인 권리로서 복제권, 방송권 및 전송권을 가지고 자신의 실연이 수록된 판매용음반에 대한 방송 사용 보상청구권을 가진다. 음반제작자는 자신의 기획으로 자신의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여 제작한 음반에 대하여 복제권, 배포권 및 전송권을 가지고, 실연자와 마찬가지로 방송 보상 청구권을 가진다. 한편 방송사업자는 복제권과 동시중계방송권(다른 방송사에 의한 중계방송에 대한 권리)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실연이나 음반 또는 방송물을 복제하거나 기타 이용할 경우에는 해당 저작인접권자의 허락뿐만 아니라 실연, 음반 또는 방송에 수록된 저작물의 저작자의 허락도 별도로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저작인접권의 보호기간은 실연의 경우에 그 실연을 한 때로부터 50년간이고, 음반의 경우에 음을 최초로 음반에 고정한 때로부터 50년간이며, 방송의 경우에 방송을 한 때로부터 50년간이다.
3. 저작권을 보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작권은 저작자가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동기(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와 관련 산업의 발전을 꾀하는 데 있다. 이것은 나아가 세계 인류 문화유산의 축적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문화의 향상 발전을 위해서는 내용과 형식을 달리하는 다양한 문학․예술작품이 창작되고 사회 일반에 의해 폭넓게 향수되어 재창작되어야 한다. 다양한 문학예술작품의 창작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어떤 창작의 유인을 제공하여야 하는데 창작활동의 주체인 창작자도 물질적 소비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정한 경제적 기초를 마련하여 경제적 부담없이 창작활동에 전념하게 하기 위하여 저작권을 부여하여 보호하는 것이다. 법리적 측면에서는 저작권을 보호하는 것이 헌법적 요청이기도 한다.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의 이념, 정의사회의 이념, 평화추구의 이념과 함께 문화민족의 이념을 기본 이념의 하나로 채택하고 헌법 제22조에서 저작자, 발명가, 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작권법에 의해 저작권을 보호하는 것은 국민의 결단인 헌법적 요청의 실현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저작권 보호의 근거를 모든 노력에는 그에 합당한 몫을 지불하여야 한다는 사회정의 실현의 측면에서 찾기도 하고, 저작물은 저작자의 인격적 산물이라는 저작물의 인격적 성격에서 찾기도 한다. 한편, 문화의 향상발전의 핵심이 폭넓은 문화 향수에 있다고 보고 자유로운 창작물의 이용을 위하여 저작권을 공유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소위 ‘카피레프트(copyleft)’ 주의라고 한다. 저작물의 자유로운 향수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고, 저작권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권리의 일부를 제한하는 것도 바람직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할 만한 일이지만 항상 저작권의 보호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4. (저작권 표시) 책의 표지나 웹사이트의 초기화면을 보면 저작권 표시 ⓒ를 많이 하고 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으려면 저작권 표시 ⓒ를 하여야 하는가?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순간 자동적으로 발생하며 저작권 표시 ⓒ가 없어도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다. 저작물을 창작하면 저작권이 자동적으로 발생하고 어떠한 절차나 방식을 요하지 않는 것을 ‘무방식주의’라 하고 우리 저작권법은 저작권에 관한 국제조약인 베른협약이 정하는 규정에 따라 ‘무방식주의’를 채택하여 따르고 있다. 그러므로,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순간 자동적으로 발생하며 저작권 표시 ⓒ가 없어도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5. (저작권 발생과 등록)저작권은 무방식주의라는 원칙에 따라 창작과 더불어 효력을 발생한다는데 저작권 등록은 왜 필요한가? 많은 비용을 들일 필요가 있는가? 저작권 등록은 저작물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침해가 발생할 경우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 소송 등에서 자신의 저작물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로서 유용하다. 저작권 등록 중 양도등록은 특히 유용하다.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이중으로 양도하더라도 먼저 저작권의 양도 사실을 등록을 해 놓으면, 나중에 저작권을 양도받은 사람에 대하여 항상 법적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이라고 부른다. 저작권 등록은 한 번의 등록으로 저작자 생존 기간 동안과 사후 50년동안 저작권보호를 받는다. 등록 수수료는 신청 수수료 1회에 지나지 않는다. 신청료와 등록료, 연간 수수료 등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저작권등록 및 양도등록은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02-2669-9950)에서 하고 있다. <저작권법상 보호대상> 6. (디자인) 홈페이지 제작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A 쇼핑몰 홈페이지를 제작해 주면서 만든 인상적인 그래픽 디자인과 플래시 이미지를 B사가 자신의 쇼핑몰 홈페이지에 그대로 베껴서 사용하고 있다. 홈페이지의 디자인도 보호를 받는가? 홈페이지에 적용되는 그래픽 디자인이나 플래시 이미지가 독창성이 있으면 당연히 저작권으로 보호된다. 독창성 판단은 자신의 것이 다른 사람의 것과 구별될 정도로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사례에서와 같이 B사가 A사의 홈페이지 중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플래시 이미지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면 A사는 B사를 상대로 침해 정지와 손해배상(민사)을 청구할 수 있고 고소(형사)를 할 수도 있다. 7. (사진‧이미지) 인터넷에 유명 연예인 팬클럽 홈페이지를 개설하려고 한다. 당연히 그 사람의 초상 사진을 써야겠는데,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초상 사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진작가와 본인의 승낙을 동시에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진작가가 직접 초상 사진을 이용하고자 할 경우에도 그것이 자신의 작품이긴 하지만 반드시 촉탁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한편, 초상 사진을 사용할 경우 저작권 문제는 아니지만 유의할 점이 있다. 초상권이란 사람이 자신의 초상에 대하여 가지는 인격적‧재산적 이익이라 할 수 있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그를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을 동의 없이 촬영하거나 공표할 수 없으며 또한 광고 등에 영리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특히, 공인(public figure)에 대해서는 이른바 퍼블리시티권이라 하여 그의 명성에 기대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므로 주의를 해야 한다. 손해배상액의 산정에서 보통 사람의 경우보다 그 배상액이 크기 때문이다. 8. (사진‧이미지) 본사는 독자적인 이미지 검색 시스템을 개발하여 홈페이지로 서비스하고 있다. 인터넷에 있는 사진‧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렇게 수집한 사진‧이미지를 작은 이미지(소위 ‘썸네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인가? 원칙적으로 썸네일을 작성하는 행위는 저작물의 복제 내지 2차적저작물의 작성행위로서 저작자의 허락이 없으면 침해가 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자신의 이미지 수집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진작가의 사진을 허락 없이 다운받아 작은 크기로 자신의 서버에 저장하여 서비스하는 행위는 해당 작가의 복제권, 전송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다. 9. (방명록) 웹사이트 방명록이나 게시판에 네티즌들이 남긴 글들도 저작물이 될 수 있는가? 웹사이트 이용자가 남긴 느낌이나 의견이 단순한 감탄문이거나 욕설의 연속이거나 짧은 단문이거나 또는 어느 게시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인 경우에는 독창성이 없어 저작물로 보기 어렵지만 그렇지 않고 나름대로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여 표현한 것이라면 설사 고도의 예술성이나 학문성은 없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저작물이 될 수 있다. 구체적 사례를 보면, 우리 법원은 초등학교 학생이 쓴 수필을 저작물로 인정한 바가 있다. 10. (사실 정보) 인터넷 웹사이트들을 보면 여행정보, 차량정보, 음식점정보 등과 같은 객관적 사실을 설명하는 자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실적 성격이 강한 정보도 저작물이 될 수 있는가? 객관적 사실을 설명한 글이라 하더라도 작성자의 전문지식과 경험 등을 바탕으로 다른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표현하여 그 내용에 독창성이 있는 경우에는 저작물로서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여행정보 등과 같이 객관적 사실을 기술한 설명 자료도 표현에 독창성이 있는 경우에는 저작물이 될 수 있다.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 법원은 해외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기술한 여행정보, 컴퓨터프로그램의 사용 방법을 설명한 글, 병역특례를 받는 방법을 설명한 글 및 도메인 네임을 등록하는 방법을 설명한 글의 저작물성을 인정한 바가 있다. 11. (이름․제목) 사람의 이름이나 단체의 명칭 또는 영화 제목도 저작물이 될 수 있는가? 사람의 이름이나 단체의 명칭 또는 저작물의 제호 등은 사상 또는 감정의 창작적 표현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저작물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름이나 단체의 명칭을 책이나 웹사이트에 이용하거나 영화의 제목을 로그인 ID 및 인터넷 카페의 명칭으로 사용하여도 저작권 침해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름을 이용하는 방법과 내용이 그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 등일 때는 인격권 침해 내지 명예훼손의 책임을 질 수가 있다. 우리 법원은 “또복이”라는 만화의 제호 및 “애마부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의 제호에 대하여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이나 가요 등과 같은 저작물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제호만을 바꿔 붙인 경우에는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 침해가 될 수 있다. 12. (데이터베이스) 유럽 여행 정보를 엮어 홈페이지 방식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가? 여행정보는 독창성이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포함하는 편집저작물로 보호를 받을 수도 있고, 독창성이 없는 정보의 집합물로서 독자적인 데이터베이스로도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저작권법은 독창성이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편집저작물의 하나로서 다른 저작물과 마찬가지로 보호수준이 높은 반면, 독창성이 없는 독자적인 데이터베이스는 다소 제한된 권리만을 보호해준다. 13. (광고) 신문사나 광고주 등의 허락을 받지 않고 신문이나 잡지의 사원모집광고를 모아서 홈페이지를 통해 이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인가? 사원모집광고의 정보 내용 즉, 모집부분․응시자격․전형방법․제출서류 및 기간․제출처 등의 소재만을 모아 자신이 독자적으로 선택․배열하여 이용하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정보로서의 소재는 저작물이 아니다. 이러한 소재 내용을 조합할 때 그 전체의 선택․배열에 창작성이 있는 경우에는 편집저작물이 될 수 있다. 선택․배열에 창작성이 있는 편집저작물을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편집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한편 사원모집광고라도 거기에 자신의 회사에 대한 홍보 등을 위해서 소재로서 광고문구를 넣는다든지 그래픽 이미지 등을 삽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그 소재가 창작성이 있는 저작물인 경우에는 이용하기 위해서 권리자의 이용허락이 필요하다. 14. (뉴스 클리핑) 신문 기사를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에 올리는 것은 허용되는가? 출처를 표시한 경우에는 어떠한가? 신문 기사는 그것이 사설이나 논평 또는 칼럼인 경우에는 물론 일반 보도 기사나 스포츠 기사인 경우에도 저작물로 인정된다. 다만, 우리 저작권법은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는 비보호저작물로 규정하여 저작권 보호를 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신문의 부고 기사, 인사 기사, 모임 기사, 기관의 동정에 관한 기사, 6하 원칙에 의하여 작성한 사건사고의 단신 등은 저작권자 허락없이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다. 단순사실에 불과하지 않는 신문 기사를 인터넷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해당 신문사 또는 신문 기자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대부분 신문사의 허락).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개인 홈페이지에 출처를 표시하고 이용하더라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15. (국가기관의 자료)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자료를 홈페이지에 이용하려고 한다. 이러한 공공기관의 자료를 이용하는 경우에도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는가? 우리 저작권법은 ① 헌법․법률․조약․명령․조례 및 규칙, ②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시․공고․훈령, 그 밖의 이와 유사한 것, ③ 법원의 판결․결정․명령 및 심판이나 행정심판 절차 그 밖의 이와 유사한 절차에 의한 의결․결정 등, ④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한 것으로서 위에 언급한 것의 편집물 또는 번역물, ⑤ 공개한 법정․국회 또는 지방의회에서의 연술을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로 열거하고 있고 이런 것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 연구보고서 등과 같은 기타의 정부저작물은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으며, 이러한 정부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관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16. (공동저작물) 대학 벤처창업동아리에서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여 학교 내에서 테스트를 한 결과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되어 독립 법인을 설립하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벤처동아리에서 공동으로 게임을 개발하던 사람이 졸업 후 별도로 사업체를 만들어 같은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공동저작물은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창작한 저작물로서 저작재산권자 전원의 합의에 의하지 않으면 행사할 수 없다. 또한,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지분을 양도하거나 질권의 목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다른 공동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개발자 중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서비스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벤처창업동아리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게임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이 공동으로 창업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개발 당시에 개발 참여 방법과 각자의 기여분 등이 다를 것이다. 계약으로 각각의 역할과 지분 등에 대해 명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공동저작자가 되기 위해서는 ‘창작적 기여’가 존재해야 한다. 단순히 업무연락이나 대외업무만을 맡았다는 이유로 공동저작자가 되지 않는다. 게임이라는 저작물의 창작에 저작자로서 창작적 기여를 했는가 여부가 중요하다.
<저작권법상 권리자> 17. (음악·음반) ○○가요제 수상곡을 모아 MP3 파일로 저장하여 인터넷과 모바일로 서비스하려고 한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 음악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저작자(작곡자, 작사자, 편곡자), 실연자(가수, 연주자, 코러스 등), 음반제작자(음반에 맨 처음 소리를 고정한 자) 등 3부류의 권리자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다. 가요제 참가 곡들은 아마추어 창작곡으로서 대개의 경우 작사‧작곡‧연주‧가창 등을 참가자들이 직접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이들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요제를 주최하는 방송사 등에서 가요제 참가 공모 시에 권리 귀속 또는 행사에 대한 일정한 내용을 수상 조건으로 하였는지 여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수상곡의 2차 이용(LP를 CD로 변환하여 발매한다든가, 광고나 영화에 삽입한다든가, 온라인 매체에서 이용할 수 있다든가 등)에 대한 권리를 누가 가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음반기획사가 이들 수상곡으로 음반을 기획하여 새롭게 가수나 연주자를 섭외하여 음반을 제작한 경우에는 음반기획사와 그에 관여한 실연자도 저작인접권자로서 일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따라서 이러한 음반을 이용해 MP3 파일을 제작하고자 한다면 이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에도 같은 가사와 악곡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작사자와 작곡가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18. (음악‧악보) 음악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연주자를 위해 연주자용 악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려고 한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 또, 가사를 포함하는 경우와 포함하지 않는 경우 차이가 있는가? 악보는 음악의 악곡을 표현하는 하나의 형식으로서 이를 사용하려면 작곡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또한, 연주용 악보라고 하더라도 가사를 같이 쓰는 경우에는 작사자의 허락도 받아야 한다. 한편, 연주용 악보는 곡의 해석과 악기의 구성에 따라 다양하게 편곡될 수 있다. 이러한 ‘편곡’이 창작적 노력의 결과로 작성되었다면, 저작권법상 “2차적저작물”로서 보호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에 의해 편곡된 연주용 악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편곡자의 허락도 필요하다. 작사자‧작곡자‧편곡자의 권리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거의 대부분 신탁받아 관리하고 있으므로, 동 협회에 신탁관리 여부를 확인하여 허락을 받아야 한다. 협회에 신탁하지 않은 저작물이 존재한다면 개별적으로 허락을 받을 수밖에 없다. 19. (음악․연주) 좋아하는 음악들을 묶어 내 자신이 연주곡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리려고 한다.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기존 창작된 음악을 새롭게 연주하거나 노래로 만들고자 한다면 창작물을 만든 작사자, 작곡자 및 편곡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다른 권리자(가수나 연주자, 음반제작자)는 해당 음악 연주에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허락은 필요하지 않다. 한편, 자신이 연주한 음악을 음반(음을 고정한 녹음물)으로 제작한 경우에는 자신이 해당 음악의 연주자로서 그리고 음반제작자로서 법에서 정한 권리(저작인접권)를 부여받는다. 이러한 음반을 다른 사람이 복제․배포하거나 전송할 때에는 자신이 권리자로서 이용허락을 해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부분 해당 권리자들이 저작권 신탁관리단체에 권리를 신탁한 경우가 많으므로 해당 신탁관리단체의 허락을 얻으면 된다. 현재 음악 저작권은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02-3660-0900), 실연자의 전송권은 (사)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02-745-8286), 음반제작자의 전송권은 (주)한국음원제작자협회(02-711-9731)가 신탁관리하고 있다. 20. (영상물) ‘옛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사이트를 개설하여 오래된 명작 영화를 인터넷으로 제공하려고 한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 영상저작물은 원칙적으로 공표한 때로부터 50년간 존속하고, 창작한 때로부터 50년 이내에 공표되지 않은 경우에는 창작한 때로부터 50년이 지난 때에 보호 기간이 만료한다. 1957년 이후에 공표되었거나 창작된 영화는 모두 보호대상이다. 대부분의 영화가 그 후 제작된 것이라 할 때 영화 저작자나 제작자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다. 주의할 점은 소설 등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영화를 이용할 때에는 특약의 여부에 따라 소설 등의 원저작자와 영화제작자 모두의 허락을 받아야 경우가 있다. 영화가 보호가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더라도 해당 영화사가 해산되어 영화에 대한 저작재산권이 소멸하는 경우도 있다. 법인이나 단체는 정관 등에 대개 해산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데 잔여재산의 처분에 대해 아무런 규정이 없거나 처분되지 아니한 잔여재산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국가에 귀속되고 따라서 저작재산권은 소멸한다.
<저작권법상 부여된 권리> 21. (공연행위) 음악을 대중 앞에서 연주하고 그 음을 확성기를 통하여 들려주는 경우에 저작권자의 이용허락이 필요한가? 음악을 대중 앞에서 연주하고 그 음을 확성기를 통하여 들려주는 것은 저작권법상 “공연”행위에 해당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청중이나 관중 또는 제3자로부터 어떤 명목으로든지 반대급부를 받지 않고, 실연자에게 통상의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다면 저작재산권 제한규정에 의해 저작권자의 이용허락 없이 그 행위가 가능하다. 22. (편집저작물 작성) 방송에서 특정주제에 관해 방영된 내용 또는 책이나 정기간행물에서 특정주제에 대해 기술된 것을 한데 모아서 이용하고자 한다. 해당 자료의 출처를 명시하여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가? 저작권법은 여러 저작물을 예시하고 있는데, 그 중 시․소설․논문․강연․연술․각본 그 밖의 어문저작물을 저작물로 예시하고 있다. 시․소설․논문 등 문서로 표현된 것뿐만 아니라 강연․연술․각본 등 구술로 표현된 것도 모두 어문저작물로 보호된다. 방송에서 방영된 내용 및 책이나 정기간행물의 특정주제에 관해 기술된 것도 어문저작물이다. 이러한 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권리자의 이용허락이 필요하다. 또한, 출처를 표시하더라도 이용허락을 얻어야 한다. 23. (전송권) 전송권은 어떤 권리인가? 전송권이란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이용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저작물이나 음반을 제공하거나 송신하는 것에 대해 저작권법이 인정하고 있는 재산적인 권리를 말한다. 저작권법은 전송을 “일반공중이 개별적으로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수신하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무선 또는 유선통신의 방법에 의하여 송신하거나 이용에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인터넷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공간이고 이러한 공간에 콘텐츠(음악 등)를 올리는 행위가 대표적으로 전송권이 적용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24. (전송권) 전송권을 부여한 이유와 법적 효과는? 2005.1.17일 발효된 새 저작권법에 따라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한 이유는 인터넷 발전에 따라 음반의 유통구조가 온라인으로 급속히 전환되는 추세를 감안하여 그들의 경제적 권리를 보호하고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하는 전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함과 동시에 조만간 가입예정인 세계실연음반조약(현재 49개국 가입)의 의무조항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류 등으로 인해 많은 콘텐츠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으며 우리 저작물이 해외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으려면 우리 저작권법을 국제규약에 맞출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정보공유라는 이유로 스캔만화, 음원파일 등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상호주의하에서 외국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게 되며 이는 통상압력의 빌미가 될 소지가 크다. 인터넷은 국경없이 전세계 어디서나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저작권법을 정비하거나 따라서 외국과 동등한 정도의 보호수준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콘텐츠 보호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전송권 부여로 인해 생기는 법적효과는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의 권리관계를 명확히 한 것외에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이전에도 온라인상에서 음악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행위 등은 저작권자(작곡, 작사가)는 복제권, 전송권으로 통제가 가능했고 실연자와 음반제작자는 복제권으로 통제가 가능했으므로 전송권을 새로 부여했다고 해서 이전에 합법이었던 행위가 새로이 불법행위가 된 것은 아니다. 25. (개정법률) 개정 법률이 2005년 1월 17일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개정법 시행 전에 온라인상에서 이용한 음악 등도 문제가 되나? 온라인상의 저작물 이용은 복제권과 전송권이 관련된다. 음악 저작자는 2005년 1월 17일 전에도 복제권과 전송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실연자와 음반제작자도 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2005년 1월 17일 전이라도 음악 저작자, 실연자 및 음반제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음악을 이용했다면 저작권법상 해당 권리자들의 복제권 또는 전송권 침해에 대한 책임은 존재한다. 개정 법률 시행으로 음반제작자와 실연자도 전송권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2005년 1월 17일 이후 카페나 블로그에서 허락을 받지 않고 음악을 이용하는 경우 저작자 및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의 복제권 및 전송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다. 26. (저작물의 업로드) 저작물 등을 다른 웹사이트, 카페, 미니홈피, 블로그 등에 올리는 행위가 저작권 침해행위인가? 웹사이트, 카페, 미니홈피, 블로그 등에 타인의 저작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타이핑이나 스캔 등을 통해 해당 저작물의 복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적이용을 목적으로 이러한 복제를 하는 것은 면책되지만, 상기와 같은 경우는 사적이용 목적의 복제를 벗어나는 것이어서 불법이다. 또한 웹사이트, 홈페이지, 블로그 등에 올리는 것은 전송의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권리자의 허락 없이 콘텐츠(음악)를 올리는 것은 전송권 침해가 된다. 또한 자신이 구입한 음악 CD를 권리자의 허락없이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여 카페 등에 올리는 것도 해당 권리자의 복제권 및 전송권 침해가 된다. 단지, 음악 CD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는 것, 이를 자신의 PC에 저장하는 것, MP3 플레이어에 담는 것 모두 자유로이 허용된다. 회원들만 듣기 위한 것이라도 회원 가입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는 경우, 또는 회원가입이 폐쇄적이더라도 가입 회원의 수가 다수인 경우에는 음악 파일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이어지는 내용 중고등부 1 30 가나안 땅이 지척에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께 반역한 죄로 하나님으로부터 출애굽 제1세대가 다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는 징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40년 광야 생활을 다 마치고 가나안 땅과 마주한 요단 맞은편 아라바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31 그리고 이로 인해 그들은 쓰라린 실패를 맛보아야만 하였습니다. 이에 모세는 그들이 32 우리는 여기서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아주 섬세하고도 치밀하게 보호하셨음을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36 뜨거운 불에 달궈지고 또 대장장이의 손에 의해 두드려지고 두드려져야 강철이 되는 62-1 계셨고, 이를 위해 마르다 마리아 자매의 기별을 받고도 즉시 가시지를 않고 이틀이나 더 지체하신 62-2 드러나듯이 당신이 부활과 생명으로서 당신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62-3 의 죽음과 다시 살리시는 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68-1 외모에 대하여 완전하게 만족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은 다 자신의 68-2 그러므로 우리는 외모로 인하여 고민하고 그로 말미암아 열등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86-1 그리하여 예배에 빠지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86-2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86-3 이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길이라고 여겨지는 세태에서 여러분은 86-4 진정으로 우리의 소원을 능히 이루어주실 수 있는 95 가장 큰 계명과 관련한 한 서기관과 예수님의 질의·응답을 기록한 것입니다. 101 모든 인간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성령을 통해 거듭나서 아름다움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은 실로 우리로 아름다운 존재가 되게 합니다. 사탄은 옛날 인류의 시조를 유혹하여 타락시킴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우리 성도들을 타락시켜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하기 위해 유혹하고 있습니다. 129 그렇습니다. 죄가 문제입니다. 죄가 죽음의 원인입니다. 죄가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로마서 5:12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이란 인류의 시조인 아담을 가리킵니다. 아담은 인류의 시조로서 그 안에서 날 모든 인류의 대표가 되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또 그 언약을 깨뜨려 범죄함으로써 그는 물론 그 안에서 날 온 인류에게도 죽음이 형벌로 임하게 된 것입니다. 130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도 있고,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타살도 있으며,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로 죽는 사고사도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물론 노환이나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가장 많습니다. 그러나 그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든 사람이 140 견고히 하게 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흠도 찾을 수 없었던 다니엘을 고소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제정한 것이었습니다. 즉 두 명의 총리와 고관들은 다니엘이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금령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고소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144 여 이집트 문명이 이루어지게 된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실로 나일강의 범람은 한편으로는 시련이었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집트 문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77 습니다. 7절에 기록된 아도니 베섹의 독백에 의하면 그는 한 때 70명의 왕의 수족의 엄지가락을 자르고 그들을 자기 상 아래에서 주워 먹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180 가나안 땅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지던 샘물까지 얻었던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186 그것은 그의 어머니 요게벳이 그의 유모가 되어 그를 양육하면서 그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나이 사십 세가 되자 191 좀 더 구체적으로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성패와 흥망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속담인 것입니다. 사람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 입니다. 그 중에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한 가지는 바로 그 사람의 가치관입니다. 211 되시는 것은 물론 여러분을 선하고 아름다운 길, 형통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12 들로 하여금 바다를 마치 마른 땅을 지나는 것처럼 259-1 예수님이 위대한 것은 그분의 행위가 위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의 말이 위대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은 모두 위대합니다. 그분은 비전이 크고 높은 말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259-2 물론 이는 허풍을 떠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큰 사람은 자기가 말한 것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259-3 믿지 못할 사람입니다. 큰 사람은 비전이 크기에 말도 크고, 또한 자기가 말한 대로, 말한 것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사람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고 행하시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말에서나 비전에서나 행함에서나 예수님을 본받음으로 예수님처럼 큰 인물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64 우리가 이 인도자의 인도를 받기만 하면 우리는 바른 길로 행하며 형통한 삶을 살다가 인생의 바른 목적지에 무사히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 인도자가 누구입니까? 267 는 ‘인자와 진리’가 임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자’가 272-1 즉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상징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72-2 비록 십자가 목걸이를 걸었을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주일에 교회에 나가도 그리스도인은 아닐 수 있습니다. 273-1 비록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 인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나무는 열매를 보고 알 수 있고, 그리스도인은 그 인격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273-2 아이가 세월이 흐르면서 자라듯이 신앙인의 인격도 갈수록 성숙해져야 합니다. 오늘날 273-3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새롭게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274 이는 겸손이 마음을 지극히 낮추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실로 우리는 마음을 낮추고 또 낮추어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겸손이 우리의 인격이 되게 해야 합니다. 겸손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제일 중요한 표징입니다. 275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4:5)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겸손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시지 않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들과 같이 되시고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주와 선생으로서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277-1 주님이 이렇게 자기 자신을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한 것이 이상할 수 있지만 주님은 그 자신이 오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 말씀과 같이 온유하고 겸손하셨기에 얼마든지 그러한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온유하신 예수님은 277-2 땅을 차지하는 사람,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은 강한 자, 권력자, 강포한 자가 아니라 온유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주인은 온유하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28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회복시키기 위함이었다는 진리를 설파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87-1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287-2 그가 우리를 대산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87-3 그런즉 우리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다만 우리는 304 에스겔은 이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즉 그는 영적 안일과 죄악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함으로서 파수꾼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한 것입니다. 305 우리도 에스겔과 같이 이 시대에 영적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런즉 여러분은 308-1 여러분, 여러분은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세우신 파수꾼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니의 뜻을 깨닫고 308-2 가지고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팔을 불지 아니하면, 우리의 입이 벙어리가 되면 우리는 파수꾼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과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309 우리는 악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는데 우리가 나팔을 불어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아 심판을 받고 죽었다면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아 죽었다면 그는 자기의 악으로 죽은 것이지만 우리는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였기에 우리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8,9절은 바로 이 사실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즉 여러분은 어디에 있든지 경고의 나팔을 열심히 불기 바랍니다. 311-1 그와 마찬가지로 영적 파수꾼도 그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영적 파수꾼은 악한 사탄의 세력의 제일 공격 목표입니다. 그래서 영적 파수꾼은 많은 어려움에 처하게 마련입니다. 영적 파수꾼은 이러한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311-2 그는 21세에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유학 후에 그곳에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조국 독일로 돌아가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가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조국 319 여기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그의 마음이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채워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320 았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이 주님께서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비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26-1 그러자 엘리사가 나섰습니다. 엘리사는 가루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솥에 넣은 다음 죽을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물론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독이 제거되어 굶주린 생도들을 살린 것입니다. 326-2 우리가 비전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 독소가 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독소를 잘 피해가야 합니다. 326-3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칩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그러한 독소가 있다면 지체하지 말고 제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비전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내적 독소에는 어떠한 것들이 327-1 우리는 그 대표적인 실례를 아간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간은 여리고를 정복할 당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께 바쳐진 여리고에서 재물을 취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게는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를 가져다 주었고 그 자신과 그의 가족은 몰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재물 곧 돈을 사랑하는 것은 무서운 독이 되어 자기와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327-2 돈을 사랑하여 돈 독이 들면 돈이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고 해도 자기를 망치고 맙니다. 328 미움이 있는 곳에는 다툼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다툼은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도 해롭게 합니다. 이러한 329-1 성경은 뼈를 썩게 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잠 14:30). 실로 미움이나 시기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독입니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실례를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야곱의 아들들은 야곱의 편애를 받았던 동생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한 나머지 그를 죽이려다가 노예 상인들에게 팔았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요셉과 아비 야곱에게 큰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그들 자신도 양심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나중에는 큰 위기를 맞아야 하였던 것입니다. 329-2 으로 채워질 때 우리 안에 미움과 시기가 자리 잡을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대신에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좋은 일 같지만 330-1 사실은 자기에게 더 유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면 자신의 마음도 파괴되고 상처를 받는 것은 물론 그 사람도 잃게 되지만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대신에 사랑하면 마음의 평안도 얻게 되고 그 사람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고 하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330-2 것은 물론 사람을 얻어 자신의 비전을 이루는 데 도움을 얻게 됩니다. 그런즉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서 미움과 시기의 독소를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대신 사랑의 싹이 나게 하시기 바랍니다. 332-1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따라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거슬러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332-2 진정 여러분은 여러분 가운데서 모든 악의 독소를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요청되는 일입니다. 악을 품고는 비전을 이루지 못합니다. 334-1 그러므로 우리는 터진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혀와 입술을 제어하여 악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품을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한 말의 독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악한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서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적절한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가 하면 악한 말 한 마디로 패가망신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의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의 말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334-2 말이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인간과 동물은 구별시켜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인간은 이 말을 통해 의사를 소통함으로써 놀라운 문화를 이룩하였습니다. 실로 말은 인간의 삶에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모릅니다. 말을 못하는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은 불편을 당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말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잘 사용하면 큰 유익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그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잘못된 말, 악한 말의 해악을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339-1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향해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고 있습니다. 이는 범죄하고 동산에 숨은 아담을 찾지 못해 물으시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는 현재 범죄한 아담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 물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 물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339-2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대답이 43 여러분, 바울은 세상 학문을 최고로 배우고 로마의 시민권자로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핍박과 고통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배우고, 깨닫고,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서 세상에서 결코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진정한 사랑을 경험했고 그의 삶을 불살라 주님을 드렸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 그의 삶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까? 44 오늘 바울의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살펴보면서 사순절 동안 어떻게 하면 우리 주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56 사람들이 그의 관용을 따라하게 되고,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 개인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평화를 누리게 만듭니다. 이러한 관용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70 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유대 교권자들에게 넘겼는데, 그 방법 또한 매우 가증스러웠습니다. 즉 예수님께 입을 맞추는 것을 군호로 하여 예수님이 붙잡히도록 한 것입니다. 142 사실 냉정하게 돌아보면 우리 자신도 너무나 많은 잘못이 있고, 또한 잘못을 할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35 그러면 어떠한 힘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은 이를 살펴보면서 성경적 남성의 덕목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20 여러분, 갈렙이 젊었을 때 광야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탐꾼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40일 동안 활동하다가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온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정탐 결과를 보고하였습니다. 이미 정탐꾼 12명 중 10명은 정탐 결과를 보고하였습니다(민 13:25-33). 보고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정탐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고 있지만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심히 견고하고, 또한 거인 족속인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이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우리를 보면 얼마나 우습겠느냐”고 비관적인 말을 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보고는 거짓입니까? 10명의 정탐꾼은 상황을 잘못 파악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보고는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혀 생각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잘못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기에도 가나안 족속은 강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이 눈에 보는 것과 상관없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들은 현실을 무시하거나 만용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부정적 보고를 한 10명과 갈렙의 차이는 현실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필연적으로 현실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충돌과 부조화를 일으키게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온전히 좇아가고자 한 갈렙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로 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민 14:10).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로 말미암아 갈렙이 목숨을 잃었습니까? 망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쫓은 갈렙은 고난의 광야를 거쳐서 결국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좇아 순종하는 사람은 그 삶에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되는 때가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성공과 평안과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하는 남성 성도 여러분들 모두는 갈렙과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59 여러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이러한 고요함, 평안함, 경건, 단정 등은 우리의 삶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얻기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해서 우리의 복된 삶, 행복한 삶은 인간적인 수준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삶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복된 삶을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된 삶의 비결인 것입니다. 기도가 바로 축복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는 무엇보다 이 기도에 전념함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74 그런데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다윗 왕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서 기뻐하며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심으로 즐거워한다는 찬양입니다. 이 찬양 그대로 다윗의 기쁨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셨으며, 다윗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골리앗을 이긴 것도 하나님의 힘이며, 십여 년 동안 사울 왕의 온갖 위협을 당하면서도 살아남은 것도 하나님의 힘이요,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면서도 말씀에 따라 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로 우리가 어떠한 일을 만나고 어떠한 환경에 빠진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인하여 능히 극복하고 기쁨과 즐거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늘 하나님의 도우심과 힘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176 여기서 구원은 일차적으로 대적과의 전투로부터의 구원과 승리를 지칭하는 것입니다만 이는 보다 넓게 확장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전제로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때 다윗은 범죄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단절의 고통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이 때 철저히 회개한 그는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셔서”(시 51:12)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177 본문 3절을 보면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6절을 보십시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복을 베푸셨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행복하게 되었음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행복과 기쁨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받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께서 복을 베푸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행복은 우리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기를 원해서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자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행복의 참된 비결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오만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을 꿇어 엎드리는 것입니다. 행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복을 구하며 겸손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182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이스라엘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처음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언제나 처음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189 남성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아이성 정복의 실패로 인하여 마음이 물과 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죄와 실수로 인하여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라도 용기를 잃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돌아온 자녀들에게 언제나 처음처럼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게 도우심을 구하는 여러분들을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언제나 처음처럼 큰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199 그리함으로 여러분 모두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얻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의미 있고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6 이러한 시대에 발맞추어 나가다보면 금방 지치고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정을 부양할 책임을 지고 있는 남성들은 더욱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268 여기서 ‘지식을 따라’란 마음 하나님께서 의도하고 있는 결혼 관계에 대한 인식을 말합니다. 즉 부부 관계에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잘 깨달아 알고 그에 근거해서 합당하게 행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여 정결한 행실을 해야 한다면 27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28-33) 283 본문 28절을 보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앞선 25절을 보면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즉 최선과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출발점은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88 여기서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했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는 두 사람의 상태가 범죄하지 않은 온전한 상태임을 나타내며 또한 부부의 관계가 지극히 순진무구한 사랑의 관계를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부부는 이러한 관계를 이루어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성경적인 가정, 이상적인 부부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 본문을 포함한 베드로전서 3:1-7절은 이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권면입니다. 302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유덕한 여자, 곧 덕이 있는 여자가 존영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332 혹시 여러분들은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을 아십니까?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을 사랑하자 아프로디테가 감동하여 여인상에 생명을 준 신화와 관련된 것으로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해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아무리 별 볼일 없는 남자라고 하여도 아내가 존경하고 믿어주면 그렇게 존경받을만하고 신실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자는 자신을 믿고 따라주고 알아주는 아내로 인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아내 여러분, 현재 남편의 모습을 넘어서서 순종과 존경으로 남편을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363 그런데 그들은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려 했을 뿐 멸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능히 정복할 것이라고 믿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그들은 먼저 항복을 하든지 혹은 사절을 보내든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정탐꾼을 잡으려고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392 그런데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존귀한 여인을 성경에서는 바로 ‘현숙한 여자’라고 불리워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롯은 바로 그러한 칭호를 듣게 됩니다. 395 그러나 당시에 룻이 이렇게 하는 것은 필시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429 이러한 겸손함은 요한복음 제12장에 나오는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는데,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던 것입니다. 당시 보통 여인들이 사람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치는 것도 금기시했음을 감안하면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던 것은 실로 상상할 수 없는 지극한 겸손의 행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로 발을 닦는 것은 노예 중에 가장 천한 노예에게도 요구되지 않는 일이라 할 수 있는데, 마리아는 주저 없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요? 바로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였기에 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주님을 지극히 높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종보다 더 낮추어 주님 앞에 겸손한 마리아의 모습이 우리 모든 여성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마르다를 보십시오. 7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을 통하여 선민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74 사람들의 상식에는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홍해로 향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155 또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162 1.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라.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이 광야는 우리가 사는 이곳과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그곳은 낮에는 최고 40도 이상 올라가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곳입니다. 뜨거운 햇볕이 비치는데다가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물조차 없었습니다. 밤에는 영상 1~2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로 변하기 때문에 광야에서 여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광야를 거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광야 행로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장정만 60만이요 남녀노소를 다 합하면 약 200만이 족히 넘는 이스라엘 진영이 어떤 방식으로 정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법궤를 안치한 성막을 정중앙에 배치하고 동서남북으로 한 방향에 세 지파씩, 열두 지파가 그 성막을 에워 쌓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는 그들이 항상 성막을 중심으로 살았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서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새해를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걷는 데에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로 하여금 바른 삶, 온전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을 아시며 가야 할 길을 아시며 도달해야 할 목표 지점을 아실 뿐 아니라 그 길로 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며 그것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자주 착각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자기 스스로 길을 가고자 하며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어처구니없게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 대신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인기 등의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여 자기 길을 열고자 하기도 합니다. CCC라는 선교 단체에서 배포하는 유명한 사영리 전도지가 있습니다. 이 전도지 마지막 부분에는 두 개의 그림이 나옵니다. 그 그림에는 왕의 자리를 상징하는 의자가 있고 주님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있고 ‘나’가 나옵니다. 이는 사람의 상태를 나타낸 것인데 그 중 하나는 내가 나의 주인인 사람입니다. 이 그림은 인생의 왕좌에 자신이 앉아 있으며 그리스도는 그 인생의 밖에 계십니다. 모든 일을 그 사람 자신이 주관하므로 자주 좌절과 혼란에 빠집니다. 다른 그림은 왕좌에 주님이 앉아 계시고 그 사람은 주님의 왕좌 아래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 사람은 그 삶의 주인을 주님으로 모시며 주님이 중심이 되신 삶을 사는 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인생의 왕좌에서 내려와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겼습니다. 모든 일을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므로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 생활을 하게 되며 하나님이 책임지므로 범사에 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중심에는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입니까? 아니면 세상 물질에 대한 탐욕, 권세에 대한 욕망, 명예에 대한 갈구가 자리하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삶, 하나님이 여러분의 범사를 주관하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특별히 이제 오늘부터 시작되는 올 한 해의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광야와도 같고 사막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 언제 어디서 불쑥불쑥 튀어 오를지 모를 문제들이 우리 삶의 주변에 산적해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여러분은 정녕 하나님을 여러분의 중심에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왕좌에 하나님이 좌정하시도록 하며 하나님 중심한 삶, 하나님께 순복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오셔서 우리 삶을 책임지시기를 원하시며 우리로 범사에 형통하며 복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232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58 그러면 그 짧은 인생은 행복하고 만족스럽습니까? 아닙니다. 259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 부족하고 모자라는 상황을 우리는 늘 경험합니다. 실로 인생은 늘 뭔가가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271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277 자신이 성취한 것들을 반추하며 좀 편안히 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30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지·정·의의 전인적인 응답을 하시길 바랍니다. 361 물론 롯은 소돔의 죄악으로 고통을 겪는 의인이기도 했습니다만(벧후 2:7), 스스로 그곳을 과감히 떠나지 못하였다는 것은 일면 그와 그의 가족이 향락에 끌렸음을 반증합니다. 401 뜻대로 되지를 않아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403 발락과 발람은 의기투합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였지만 조금이라도 뜻을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는 모든 일에 앞서서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학개2차 1장 4 그로 말미암아 그 내용의 신빙성에 힘을 더하여주고 있다. 5 다만 많은 학자들은 2:3에서 이전 성전에 대해 언급하는 것과 관련하여 학개가 제1성전 즉 B.C. 586년에 파괴된 솔로몬 성전을 직접 보았던 사람으로서 매우 연로한 상태에서 성전 재건을 부르짖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본서에 성전 재건 이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에서도 지지된다고 할 수 있다. 9 본문의 표현은 주어가 강조된 형태이다. 여기서 ‘이 전이’에 해당하는 ‘웨합바이트 핫제’는 서술어에 선행하여 강조되어 있으며 이 표현 자체도 정관사 ‘헤(h)’와 더불어 지시 대명사가 사용되어 특별히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집, 바로 그 성전이 이처럼 황폐하였는데’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황폐하였거늘’에 해당하는 ‘하레브’는 가뭄으로 타버리거나 바싹 말라 아무런 생명력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 철저히 파괴되어 인적마저 완전히 끊긴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다(느 2:17;렘 33:12).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이 B.C. 586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여호와의 성전까지 완전히 불살라 버렸다고 기록한다(렘 52:13).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대적들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지대만 놓였기 때문에(스 3:10:4:24) 여전히 황폐한 상태로 놓여있다고 언급되는 것이다. 물론 당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전 재건이야말로 신앙 공동체의 회복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처럼 성전이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 신앙이 회복되지 못하고 황폐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50 즉 6월1일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였고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6월24일에 성전 공사를 재개한 것이다. 이 23일의 기간 동안 선지자가 계속해서 예언 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찌 되었건 23일 만에 성전 공사가 재개 되었다는 것은 선민들이 선지자의 말씀을 받자마자 매우 큰 감동을 받았고 적극적으로 이 일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회의 소집과 의결과 준비 작업 등의 과정을 거쳐서 성전 재건 작업을 시작하기에 23일은 매우 짧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장 3 이러한 전통을 감안할 때 학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 신실한 자들은 초막에 거하면서 성전 건축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짓는 성전이 임시 거처인 초막과 별 다를 것이 없는 초라한 성전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3절). 4 ‘바라건대’, ‘청컨대’라는 의미와 더불어 이어지는 명령을 지금 당장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즉 화자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이어지는 내용을 반드시 전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다. 9 본문에서는 ‘모든 백성아’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공동체 전체가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축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28 가 있습니다. 이 두 양쪽의 견해가 모두 설득력이 있는 만큼 어느 하나의 주장에 치우치기 보다는 양쪽의 견해 모두를 포괄적으로 받아들여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45 여호와께서는 바로 이 ‘오늘’ 이전을 회상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바로 오늘 이전은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로 언급된다. 이는 45-2 이 표현은 성전의 철저히 황폐화된 모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으로 보이는데(마 24:44), 이는 18절의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이라는 표현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여호와의 성전 재건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성전 재건 공사가 시작된 것은 6월24일인데 3달이나 지난 시점인 ‘오늘’이 왜 성전 재건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날로 언급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10절). 아마도 지난 세 달 동안은 성전 재건 공사를 준비한 기간, 즉 재료와 설계도를 준비하고 기초를 재정비하는 기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전은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않은 날’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바로 ‘오늘’이 본격적인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하는 날로 볼 수 있는 것이다. 50 한글 개역 개정판 성경의 본절에 대한 번역은 그 의미가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다. 자칫하면 본문에서 언급되는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이 과거 16년 전, 즉 B.C. 536년에 처음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한 날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원문상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바는 본절에서 언급되는 ‘오늘’은 ‘아홉째 달 이십사일’이며 이는 또한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이다. 그러므로 본절을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자, 너희 마음으로 생각해 보라, 오늘 이전을, 9월24일 이전을,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가 세워진 날 이전을, 너희 마음으로 생각해 보라(YLT, Set it, I pray you, to your heart, from this day and onwards, from the twenty and fourth day of the ninth month, even from the day that the temple of Jehovah hath been founded, set it to your heart)’이다. 즉 본절에서는 같은 날을 세 번에 걸쳐 다르게 언급하고 과거를 회상할 것을 두 명령어를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성전 지대가 놓여진 바로 오늘로부터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9절). 한편 6월24일에 성전 재건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전 지대를 쌓은 날로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15절 강해를 참조하라. 51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견해 중 어떤 견해를 취하든지 본절 하반절과 연결되어 장차는 하나님께서 풍성한 수확의 복을 내리셔서 창고를 가득 차게 해 주실 것임을 나타낸다는 점은 분명하다. 1:14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dam rhmw bwrq…bwrq, 카로브…카로브 우마헤르 메오드). 앞선 7-13절이 임박한 여호와의 날에 임하게 될 남유다를 향한 대심판에 대한 제1차 경고라면 이어지는 14-18절은 제2차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여호와의 날’이 어떠한 심판의 날로 임할 것인가를 앞선 7-13절 보다 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선 본절에서는 ‘여호와의 날’이 매우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함과 동시에 용사가 그 날에 슬피운다는 진술을 통하여 여호와의 날의 참상을 강조한다. 즉 여호와의 날의 임박성과 그날에 있을 용사의 애곡이란 의미심장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백성들의 회개를 더욱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2:1-3). 한편 본문의 ‘가깝도다’에 해당하는 ‘카로브’는 만질 수 있을 정도로(레 10:4; 출 36:2) 매우 가까이 임박한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는 본절에서 두 번이나 사용되어 그 의미가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빠르도다’에 해당하는 ‘우마헤르’는 개역 개정판 성경에서는 번역하지는 않았지만 ‘매우’라는 의미를 가진 ‘메오드’의 수식을 받고 있다. 즉 ‘매우 빠르도다’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여호와의 날이 이처럼 임박했고 그 날이 매우 빠르게 임한다는 것은 결국 선민들로 하여금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온전한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14 심히 슬피 우는도다(jrx rm, 마르 초레아흐). ‘슬피 우는도다’에 해당하는 ‘초레아흐’는 ‘크게 외치다’(사 42:13), ‘울부짖다’, ‘포효하다’란 뜻을 지닌 ‘차라흐(jrx)’의 능동 분사형이다. NIV는 ‘초레아흐’를 용사가 전쟁터에서 ‘포효하고 있다’, ‘큰 소리로 외치다’란 뜻을 지닌 것으로 이해하여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상 이러한 번역은 타당하지 않다. 본문에서 ‘초레아흐’는 슬픔으로 인하여 ‘크게 울부짖다’란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특히 본문에서 ‘초레아흐’는 분사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그 슬픔이 너무도 커서 지속적으로 울부짖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용사’가 극심한 마음의 괴로움으로 크게 울부짖고 있다면 일반 백성들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의 환난과 두려움은 용사마저도 심히 슬피 울게 된다면 힘없는 일반 백성들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의 큰 날의 심판의 참상을 귀에 들리는 듯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15 그날은…구름과 흑암의 날이요(lpr[w Nn[ Mwy…hrb[ Mwy, 욤 에브라…욤 아난 와아라펠). 본절과 16절은 앞선 원문 구조 분석에서도 자세하게 설명한 바와 같이 교차대구법(交叉對句法)이 사용된 표현으로 여호와의 날의 양상을 매우 다양하면서도 강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패역한 남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혹독하며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부정적 의미를 지닌 단어를 반복 사용하여 강조하는데 각 부분에 대한 의미는 원문 구조 분석의 해당 부분을 참조하라. 1:16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날이로다(h[wrtw rpwv Mwy, 욤 쇼파르 우테루아). 본절을 직역하면 ‘견고한 성읍을 향한 그리고 높은 망대를 향한 나팔과 함성의 날이다’가 된다. 이러한 본절은 문장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앞선 15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선 형식적인 면을 살펴보면, 15절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날’을 묘사함에 있어서 동사가 등장하지 않고 명사가 직접적으로 ‘날(Mwy, 욤)’을 수식하여 꾸며주고 있다. 본문에서는 ‘나팔(쇼파르)과 함성(테루아)’이 ‘날’을 꾸며준다. 그리고 ‘불어 경고하며’로 번역된 ‘테루아’는 ‘고함을 치다’(삼상 17:20), ‘외치다’(수 6:10)란 뜻을 지닌 동사 ‘루아으’에서 유래한 명사로 ‘고함’, ‘외침’, ‘함성’을 뜻한다. 그런데 ‘테루아’는 구약 성경 대부분의 용례에서 본문과 마찬가지로 ‘나팔’이란 단어와 함께 사용된다. 즉 ‘나팔을 불며 함성을 외치는’ 행위는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팔과 함성’을 함께 크게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은 안식일이나 희년 같은 성회를 온 백성에게 선포할 때(레 23:24;25:9;민 29:1), 전쟁을 시작할 때(수 6:5,20;렘 4:19;암 2:2), 또는 여호와의 궤를 다윗성에 들여올 때처럼 국가적 경사를 백성들에게 알릴 때에(삼하 6:15;대상 15:28) 행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본문에서의 ‘나팔과 함성의 날’은 대적들이 도발하는 전쟁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고 높은 망대를 향한 나팔과 함성의 날’이란 표현은 여리고 성을 향한 여호수아의 정복 기사를 연상케 한다(수 6:5,20). 하지만 본문에 제시된 ‘나팔과 함성의 날’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공격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본문은 여호와의 분노로 인한 심판의 날에 임할 그 백성의 황폐와 패망을 알리는 ‘나팔과 함성’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날에는 과거 ‘나팔과 함성’ 소리가 여리고 성을 황폐와 패망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이제는 예루살렘을 황폐와 패망으로 이끈다는 사실이 예언되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의 뉘앙스를 사용하여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을 예언하는 본문은 우선 예루살렘을 향한 바벨론의 공격으로 일차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날’ 곧 말세에 온 세상, 특별히 악인들을 향해 퍼부어질 대심판 날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리포트 26 앞선 제1-8장과 문체와 내용에서 현저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앞선 제1-8장이 당시의 선민 공동체가 직면한 실제적 문제인 성전 재건과 금식 관련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 제9-14장은 묵시적이고 종말론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특별히 제11장은 메시야를 상징하는 참 목자의 행적과 백성들의 배척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제9-14장은 슥 1장 12페이지 즉 성전 완공 후에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재하실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가 더욱 온전하여 질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4페이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기억할 사실은 많은 경우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 자신으로 드러나며 이는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어지는 11절 강해를 참조하라. 36 즉 표현 자체는 하나님과 천사 모두를 망라하여 사용되는 표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문에서 선지자가 ‘내 주’라고 부른 존재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애매한 점이 있다. 즉 8절의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한 사람’, 즉 제2위 성자 하나님일 수도 있고, 이와 달리 하나님께서 계시 전달을 목적으로 보내신 한 천사일 수도 있다. 본절 하반절에서 ‘내게 말하는 천사’라는 표현을 따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질문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한 사람’을 향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83 즉 ‘암’과 ‘고임’은 둘 다 ‘나라’, ‘국가’라는 의미이지만 주로 ‘암’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지칭할 때 사용되며 ‘고임’은 이방 나라를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교회 학교 교사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질문 딤후 2:1-2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1. 영적 부모입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내 아들아"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르치고 인도하였던 디모데를 향하여 "내 아들"이라고 부른 까닭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디모데를 낳았기 때문입니까? 바울이 디모데의 육신의 아버지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내 아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그 까닭을 바울이 디모데를 자식처럼 여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답은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영적으로 낳은 영적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내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너는 영적으로 낳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 아버지요, 디모데는 바울에게 영적 아들인 것입니다. 2. 은혜를 체험했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바울은 계속되는 1절의 말씀 속에는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앞으로 너 또한 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게 될 것인데 그 가르치는 일을 잘 하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야 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분명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은혜 속에서 강하라라고. 우리 성도는 은혜 속에 거할 때 강해집니다. 은혜를 체험해야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은혜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 속에 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은혜 속에서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비전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의 가르침에 있어서 네 개의 세대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먼저 바울 자신이 가르침의 제1세대입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디모데가 제2세대입니다. 또한 2절의 디모데가 가르친 충성된 사람들이 제3세대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충성된 사람들이 가르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제4세대 사람들입니다. 끝맺는 말 2. 스가랴 관련 주요 일람표 ?스가랴 연대표? 예루살렘 함락(586 B.C.)
스가랴
?스가랴가 본 8대 환상과 의미? 붉은 말을 타고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와 세 말의 환상(1:7-17)
?스가랴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주요 예언?
?스가랴서에 등장하는 주요 핵심 요소? 핵심 요소
내 용
?10대 주요 인물?
헬렘으로도 불림(6:10,14).
강원도 횡성. 핸드폰이 터지지 않고 버스가 올라 갈 수 없는 곳에서 2박3일간의 중고등부 수련회를 가졌다.
2박3일 동안 무척이나 편안하게 쉬었다. 몇년간을 통털어 가장 편안하게 쉬었던 것 같은데, 몸이 놀라서인지 몸살에 걸렸다.
연욱씨 이 부분은 특별자료 서문이거든요. 지금 현재 있는 건 그대로 두시고 따로 하나 만들어 주세요.
실장님께 보여드리고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또 다른 이름은 ‘성민(聖民)’ 곧 거룩한 백성이다. 이처럼 그들을 ‘성민’으로 일컫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거룩한 삶을 또한 요구하신다(레 19:2). 여기서 두번째 이유가 산출된다. 곧 그들의 ‘성민’으로서 면모는 그들의 거룩한 삶을 통해서 구현되며 이것이 전제될 때 명실상부한 성민으로 일컬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한 시도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선민으로서 자부심을 잃은 적이 없었던 듯하다. 심지어 우상 숭배가 만연한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당시에도, 멸망을 눈앞에 둔 남유다의 여호야김, 시드기야 당시에도 선민의식만은 굳게 붙잡고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으로서 형식적으로나마 제사와 절기 등을 준수하였고 그것으로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보장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민으로서의 면모를 특징짓는 또 다른 동전의 한 면인 진실한 삶, 정의로운 삶과 동떨어진 거짓되며 불의한 삶으로 치우칠 때가 많았다. 특별히 멸망에 즈음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진실과 정의, 자비가 실종되고 오직 기만과 폭력만이 난무하였다. 당시 지배층은 힘의 논리만을 따라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온갖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였다.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과 쾌락을 위해 이웃을 배신하고 그들의 평화와 안녕을 유린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그들의 죄악을 거듭 규탄하며 부정한 이방 우상숭배자들이나 당할 것이라 생각한 심판이 바로 그들 위에 내려질 것이라 선언하였다. 우리는 아래의 본문들에서 ‘성민’의 면모를 상실한 저 옛날 구약 선민들의 어두운 그림자와 그들 사회의 암울한 실상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구약 예언서에 제시된 사회 정의를 상실한 선민의 죄악에 대한 선지자들의 고발을 통해 새로운 선민으로 택함 받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또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진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그 처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정의롭고 진실한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의 소아적 이해(小我的 利害)와 안일을 희생하고 여호와의 정의와 진실을 구현함으로 진정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성민으로서 삶의 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결국 정의와 사랑에 목마른 온 세상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사랑과 정의를 증거하고 그의 은혜로우심을 드러내는 첫걸음이자 필부 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이다(벧전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