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학교 교사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질문 딤후 2:1-2
핵심 주제 : 교사에게 요구되는 자기 점검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시작하는 말
교육을 농사에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교회 학교에서 시행되는 교육은 모판, 즉 못자리에 해당합니다. 못자리는 모가 스스로의 힘으로 논에서 자랄 수 있기 전까지 세심하게 보살펴 주는 임시 장소입니다. 바로 이 못자리에서 한 해 농사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교회 학교의 교육이 삶의 성패를 좌우하는 이와 같이 중요한 못자리와 같습니다. 우리 어린 학생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세상과 사회 속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하고 훈련하는 곳이 바로 교회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서 헌신을 다짐하는 우리 모두는 이미 교회 학교 교사로 임명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러니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을 향하여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교사입니까? 우문처럼 들리는 이 질문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해서 교사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교사입니까?”라는 이 질문의 의미에 대해서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보고, 우리 스스로가 그 질문에 자신 있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1. 영적 부모입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내 아들아"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르치고 인도하였던 디모데를 향하여 "내 아들"이라고 부른 까닭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디모데를 낳았기 때문입니까? 바울이 디모데의 육신의 아버지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내 아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그 까닭을 바울이 디모데를 자식처럼 여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답은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영적으로 낳은 영적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내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너는 영적으로 낳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 아버지요, 디모데는 바울에게 영적 아들인 것입니다.
오래 전 상영된 영화 가운데 「로렌조 오일」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렌조라는 어린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로렌조가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니며 수차례 검사를 한 결과 로렌조는 ‘부신백질이영양증’ 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영어 약자로 ALD라고 합니다. 이 병은 아직 치료법이 발견되지 못한 불치병이라고 합니다. 10만 명 중 1명이 이 병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병입니다. 첫 증상이 나타난 지 6개월 만에 시력과 청력을 잃게 되고, 2년 내 식물인간이 된 후, 결국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입니다. 이 병은 유전적인 병으로 그 원인이 로렌조의 부모에게 있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포기하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로렌조의 부모가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올리브 기름에서 병을 억제하는 물질을 발견하고 치료에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완치는 안 되고 그저 병의 진행을 멈추는 정도의 효과만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부모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육신의 부모가 되기가 더 어렵겠습니까, 아니면 영적인 부모가 되기가 더 어렵겠습니까? 사람 나름이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든지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는 것입니다. 부모다운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부모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렌조의 부모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들의 병을 고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럼 우리의 영적 자녀들이 영적 불치병이나 영적 희귀병에 걸려 영적인 고통과 고난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한다면 교사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영적 자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질문은 "교사입니까?"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영적 부모가 되는 것을 다짐하길 바랍니다. 영적 부모로서의 교사가 되십시오. 위대한 스승 바울처럼 영적 부모로서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은혜를 체험했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바울은 계속되는 1절의 말씀 속에는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앞으로 너 또한 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게 될 것인데 그 가르치는 일을 잘 하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야 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분명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은혜 속에서 강하라라고. 우리 성도는 은혜 속에 거할 때 강해집니다. 은혜를 체험해야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은혜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 속에 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은혜 속에서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은혜를 받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은혜를 받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제사이고, 신약성경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예배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의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풍성하게 예비된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생활은 곧 예배 생활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예배를 통해서 받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는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교회 학교 교사의 자산입니다. 교사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거듭난 체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교사들은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를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전에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을 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무엇인가 대가를 위해 일했지만, 이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돈과 시간과 인생을 드려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바울 자신을 부인하게 만들었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른 전도자들처럼 많은 권리를 행사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이는 은혜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은혜의 체험이 자기 부인과 자기 포기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 모든 교사들도 이러한 바울처럼 예배를 통하여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며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나 은혜 속에 강한 그리스도인, 자기 부인과 자기 포기의 신앙인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비전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의 가르침에 있어서 네 개의 세대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먼저 바울 자신이 가르침의 제1세대입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디모데가 제2세대입니다. 또한 2절의 디모데가 가르친 충성된 사람들이 제3세대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충성된 사람들이 가르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제4세대 사람들입니다.
바울로부터 시작해서 디모데, 디모데의 가르침을 받은 충성된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또 다른 사람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한 사람으로 시작된 가르치는 일이 디모데와 충성된 사람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로 확대되어 팽창하고 있습니다. 영적 재생산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바울로부터 시작한 이 영적 재생산의 라인을 거쳐서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증거 되고 전달되었습니다. 만약 이 영적 재생산의 라인이 끊어진다면 복음은 더 이상 전달되지 않습니다. 사 52:7은 좋은 소식을 전하며 복된 소식을 가져오는 자의 산을 넘는 발길이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복음이 우리 다음 세대에도 계속해서 전해지는 아름다운 역사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순간까지도 복음은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그 복음을 가르쳐 줘야 하고 전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자랐을 때에 그들 역시 복음의 일꾼이요,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많은 영혼을 인도하리라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이러한 비전을 가지라는 촉구가 발견됩니다. “충성된 자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가르칠 수 있으리라.”
위대한 교사 바울이 가졌던 비전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가 디모데를 가르친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이 다음 세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가르쳐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복음의 전파가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비전이 있습니까? 내가 가르치고 있는 이 아이들이 충성되게 자라나고, 이 아이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선포되어지고, 가르쳐질 것이라는 비전이 있습니까? ‘교사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이 질문 역시 포함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계속적인 영적 재생산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오늘도 아이들에게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사랑으로 복음의 물을 주는 교사, 이들이 바로 비전의 교사들입니다. 꿈이 있는 교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처럼 이런 비전이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영광된 미래를 꿈꾸는 교사가 더 큰 비전을 가진 아이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되어지는 것입니다.
끝맺는 말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 학교 교사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먼저 영적 부모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로 거듭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전이 있습니까라는 질문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질문은 교사입니까 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 가지 질문 앞에 “예,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교사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교사들이 되길 바랍니다.